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시학》(Poetics)*은 서양 문학과 극작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저술이다. 그는 비극(tragedy)의 본질과 구조를 분석하며, 비극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를 제공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비극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으로, 인간의 내면과 운명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극적 서사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셰익스피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직접적으로 참고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의 비극이 *《시학》*에서 제시된 비극의 원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비극의 핵심 요소를 분석하고, 이를 셰익스피어의 주요 비극들과 비교하여 두 사상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비극의 정의
1.1 비극의 본질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비극은 행동의 모방(mimesis)이며, 그 행동은 엄숙하고 완결되었으며, 적절한 길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비극은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이러한 감정을 정화(카타르시스)하는 작품이다." (Poetics, 1449b)
그는 비극이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인간 삶의 심오한 진실을 탐구하는 장르이며, 이를 통해 관객이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경험을 한다고 보았다.
1.2 비극의 필수 요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플롯(plot, μῦθος) –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야기의 구조가 논리적이고 필연적이어야 한다.
- 성격(character, ἦθος) – 주인공의 성격과 도덕성이 중요하며, 관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 사고(Thought, διάνοια) – 극에서 전달되는 주제와 철학적 메시지.
- 언어(Diction, λέξις) – 시적이고 효과적인 표현.
- 멜로디(Melody, μέλος) – 음악과 합창의 요소.
- 장면(Spectacle, ὄψις) – 시각적 연출과 무대 장치.
이 중에서도 플롯과 성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과 셰익스피어 비극의 연관성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을 분석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보겠다.
2.1 플롯과 필연성 (Mythos: 필연적 개연성)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플롯이 논리적 필연성을 가져야 하며,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인과관계를 통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는 주인공이 예언을 듣고 왕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며 점점 파멸해 간다.
- *《오셀로》*에서는 이아고의 음모로 인해 오셀로가 점점 질투에 사로잡혀 파멸하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은 사건이 필연적 개연성(probability and necessity)을 가지며 전개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과 부합한다.
2.2 주인공의 성격과 비극적 결함 (Hamartia: 치명적 결함)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 영웅이 지나치게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며, 특정한 **치명적 결함(hamartia, 하마르티아)**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주인공들은 이 개념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 《햄릿》 – 햄릿의 결함은 과도한 고뇌와 결단력 부족으로, 그의 망설임이 비극을 초래한다.
- 《맥베스》 –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야망이 너무 강해 결국 파멸한다.
- 《오셀로》 – 오셀로는 질투심과 이아고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순진함이 문제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영웅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적절한 성격을 갖추면서도,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존재"*로서 묘사된다.
2.3 인식과 반전 (Anagnorisis & Peripeteia)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서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순간(Anagnorisis, 아나그노리시스)과 극적인 전환점(Peripeteia, 페리페테이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햄릿》 – 햄릿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결투에 임하지만, 너무 늦었다.
- 《리어 왕》 – 리어 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잘못 판단했음을 깨닫지만, 그녀가 죽은 뒤에야 진실을 깨닫는다.
- 《오셀로》 –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나서야 그녀가 무고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셰익스피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적 구조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2.4 카타르시스 (Catharsis: 연민과 두려움을 통한 정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연민(pity)과 두려움(fear)**을 유발하여 관객이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도 이러한 카타르시스의 요소를 강하게 포함하고 있다.
- *《햄릿》*을 보면서 관객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비극적 운명에 연민을 느낀다.
- *《맥베스》*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죄책감과 광기로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경각심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 *《오셀로》*는 사랑과 질투가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강한 감정적 영향을 준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개념을 실현하며, 관객에게 감정적인 정화를 제공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와 셰익스피어 비극의 차이점
- 플롯의 구조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단일한 플롯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으나, 셰익스피어는 여러 개의 부차적 플롯(subplot)을 포함시켰다. (예: 햄릿의 복수 이야기와 오필리아의 광기 서사)
- 운명 vs. 자유의지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은 운명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주인공의 자유의지가 비극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 장르 혼합 – 셰익스피어는 종종 희극적 요소를 삽입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유머를 활용했다.
결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서양 비극의 기초를 제공했으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그의 이론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플롯의 개연성, 비극적 결함, 인식과 반전, 카타르시스 등 많은 요소에서 셰익스피어 비극은 *《시학》*의 이론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플롯 구조와 주제 면에서 독창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셰익스피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극작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