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서사시로, 고대 그리스 신화와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웅 서사를 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각각 트로이아 전쟁과 그 후의 귀환을 다루며, 서로 다른 서사 구조와 신화적 원형을 활용하여 인간의 운명과 신의 개입, 영웅적 시련과 귀환을 주제로 한다. 본 논문에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서사 구조를 비교하고, 신화적 원형이 어떻게 변주되는지 분석함으로써 호메로스 서사의 특징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서사 구조의 차이
1.1 《일리아스》: 전쟁 서사의 구조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10년 차를 배경으로 하며, 전쟁의 전체 과정을 서술하기보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화해라는 특정한 서사적 순간에 집중한다. 이 작품의 주요 구조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서두(프롤로그): 서사시의 주제 제시 ("아킬레우스의 분노")
- 발단: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
- 전개: 트로이아 전쟁의 주요 전투와 신들의 개입
- 위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과 아킬레우스의 복수
- 절정: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전
- 결말: 프리아모스 왕의 간청과 아킬레우스의 용서
이처럼 《일리아스》는 전쟁의 시작과 끝을 다루기보다는, 전쟁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을 서사적 초점으로 삼아 서술한다. 이는 사건 중심적 서사 구조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서사시의 특징을 보여준다.
1.2 《오디세이아》: 귀환 서사의 구조
반면,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 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시련을 다룬다. 이 작품의 주요 구조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서두(프롤로그):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소개하고, 신들의 논의
- 발단: 텔레마코스(오디세우스의 아들)의 성장과 여정
- 전개: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시련 (키르케, 사이렌, 칼립소 등)
- 위기: 이타카로 귀환 후 궁전에서 벌어지는 긴장
- 절정: 구혼자들과의 전투 및 복수
- 결말: 가족과의 재회 및 질서 회복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아니라 개인의 귀환과 정체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며, 순차적 서사 구조보다는 액자식 구성(이야기 속 이야기)과 회상 기법을 활용한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일리아스》와 대비되며, 《오디세이아》가 보다 개인적인 서사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신화적 원형과 영웅의 여정
2.1 《일리아스》 속 영웅 원형: 분노하는 전사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의 '영웅의 여정' 개념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전형적인 **전사형 영웅(Warrior Hero)**으로 묘사된다. 그는 신의 혈통을 지닌 반인반신으로서 용맹과 무력을 지닌 존재이며, 전쟁 속에서 자신의 명성을 쌓아간다. 그러나 그의 주요 서사는 영웅적 성장이라기보다는 분노와 복수, 그리고 용서의 서사로 정리될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그의 행동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며, 이는 고대 서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노하는 신화적 영웅의 원형을 따른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절대적인 전투력을 보이지만, 결국 프리아모스 왕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회복하고 용서를 선택하는 모습으로 서사의 마무리를 짓는다.
2.2 《오디세이아》 속 영웅 원형: 지혜로운 모험가
반면, 오디세우스는 **지혜로운 모험가(Smart Hero)**의 원형을 따른다. 그는 무력이 아니라 기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인물로, 신화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트릭스터(Trickster)"적 요소를 지닌다.
그의 여정은 캠벨의 '영웅의 여정' 17단계 중 다음과 같은 구조를 따른다.
- 일상의 세계: 이타카의 왕
- 모험의 소명: 트로이아 전쟁 이후 귀환
- 시련과 동맹: 폴리페모스(외눈박이 거인), 키르케, 하데스 방문 등
- 궁극적 시험: 구혼자들과의 대결
- 귀환과 변형: 가족과 재회하고 왕권을 되찾음
이처럼 오디세우스의 서사는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라 지혜와 인내, 가정의 회복을 강조하는 구조를 지닌다.
3. 신과 인간의 관계
3.1 《일리아스》의 신적 개입
《일리아스》에서 신들은 전쟁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들로 등장한다. 제우스, 아테나, 아폴론 등은 인간 영웅들의 운명을 좌우하며, 전쟁 자체가 신들의 갈등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아킬레우스의 운명은 신들의 개입에 의해 결정되며, 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제시된다.
3.2 《오디세이아》의 신적 개입
반면, 《오디세이아》에서 신들은 영웅의 성장과 시련을 돕거나 방해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돕는 보호자로서, 포세이돈은 그를 방해하는 대립자로 설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오디세이아》의 신들은 인간의 시련을 극대화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그의 귀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결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각각 전쟁과 귀환이라는 대조적인 서사를 통해 영웅적 원형을 변주하며, 신과 인간, 운명과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일리아스》는 전사적 영웅의 비극적인 서사를 강조하는 반면, 《오디세이아》는 지혜로운 영웅의 귀환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두 작품에서 신들의 역할은 각각 전쟁의 판도를 결정하는 존재와 인간의 여정을 돕거나 방해하는 존재로 차별화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호메로스 서사의 다층적인 서사 구조와 신화적 원형의 변화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